엔은 나에게, 자기라면 그렇게 줄줄이 길게 오장로님께 카톡하지 않겠다고, 그냥 아직 소셜네트워크 하는 사람 모으냐고 물으면 된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래도 막상 카톡을 보내려니, 어느 것이 나을 지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느껴져서 내가 물었다.  "~~ 아직 모집하세요?"랑 "~~ 아직 모집하시면, 저도 참여하고 싶어요."랑 다르지?  엔은 살짝 장난인지 꼬는 말투로 '말이 다르잖아.' 하며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 다르지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니지.  어떤 뉘앙스가 나을지 물어본 것인데, 글자 수가 다르다는 얘기를 하면, 참, 어이가 없다. 

 

그 조금 전에 PC dropbox와 나의 셀폰을 연결하려고 하였는데, 내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기에, 엔은 그런 점도 마음에 안들고, 본인도 안해본 것을 찾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물어보는 것이 성가셨나보다.  조금 짜증을 냈다.  이해가 간다.  그래서, 다행이 내가 조금 해보다가 해결법을 찾아서, 셀폰과 연결 할 수 있었다.  

 

그저께는 밤에 이 층에 올라와서, 나는 먼저 안방에서 샤워하고 게스트 화장실에서 양치하는데, 엔이 침실로 이미 간 것 같았다.  그저 양치질을 끝내고 나오는데, 엔이 속옷을 들고 침실에서 게스트 화장실로 오는 것을 보고, 내가 방끗 웃으며 '샤워 할거야?' 그랬다.  나는 침대에 들어가기 전에 샤워하고 깨끗한 것이 이왕이면 좋다는 생각이고, 엔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나는 그날 엔이 샤워 안하고 자는 가보다 하고 별 느낌없이 생각하다가, 엔이 샤워하니까 그저 나의 스타일을 위해 주는 것같기도 하고, 좋았다.  그런데, 엔은 '왜 신경써?'라고 했다.  기분이 나빴다.  엔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극도로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니, 그런가보다 이해해 주려 하며 삼켰다.  요즘 내가 엔과 너무 가까와서, 혹 내가 조금이라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느낌을 줬나 보다, 조금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데, 생각했다.  그런데도, 며칠 동안 마음이 쓰라렸다.  일부러 더 나의 일에 몰두하려고 노력해왔다.  내 기분을 느낄 시간도 없도록 말이다.  

 

컴퓨터가 윈도우즈10으로 업그레이드 한 후에 소리가 큰 모니터에서 안난다.  엔이 '말이 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오피스에 올라와서, 세시간째 고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이어폰이 안되고 저렇게 하면 이어폰만 들리고, 영 못고치고 있다.  우선 이어폰이라도 들리게 해놓고 써야 겠다고 결정하고 옆 방에 기도하러 갔다.  

 

기분은 여전히 나쁜데, 엔과 이 얘기를 하면, 엔이 잘못한 것은 없고 내가 민감해서 그렇다고 할거다.  나도 엔의 그런 주장을 꼭 집어 뭐가 잘못인지 지적하지 못할 것이고.  누구의 잘못이냐는  이제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 첫 괴로움은, 내가 아직도 그런 일로 마음이 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상하지 않기 위해 그 많은 시도와 생각의 전환을 해봤지만, 아직도 나는, 엔의 그런 행위에,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나의 어떤 죄악 때문인가 돌아본다.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내가 엔에게 너무 다가갔기 때문인지 돌아본다.  기도하다가, 엔이 그 상황에서 무심하게 행동한 것은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내가 그것이 엔의 실수라고 엔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엔의 실수다.  어마어마한 실수는 아니다.  지난 25년간 반복 돼왔기에, 내가 쉽게 마음이 아픈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동안 나에게는 상처도 많았고, 어리석게도 나를 제대로 세우지 못해온 것을 받아들인다.  나를 지켜야 한다.   엔을 설득하고 말고는 이슈가 아니다.  나는, 아까는 엔이 실수 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말로 다 표현을 못해도, 그건 엔의 실수다.  그리고 나도 크고 작은 실수를 아주 많이 하는 것처럼, 엔도 실수 한 것 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넘어갈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엔의 실수가 아니라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죄인 것처럼, 엔도 죄인이다.  나의 기준을 엔에게 세울 수는 없다.  나의 기준을 나와 주님이시다.   엔녀 조심도 이제 놔야 한다.  그 시간의 낭비를 이제 나를 위해 써야 한다.    나는 주님 안에서 아주 이기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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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은 나에게 큰 기대하지 말고, 그저 남들 (예를 들어 목자 목녀님을 제시했다) 대하듯 대해 달란다. 

남들은 내가 당신 사랑하듯 사랑하지 않아서 어렵다니까, 그럼 J한테 그렇게 잘하는 것은 무어냐고, J 대하는 것의 반의 반만큼 자기에게 하란다. 


생각해본다.  부부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랑 어떤 관계를 원하는 것일까, 주님과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분명 내가 J를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N과의 사랑은 

- 훨씬 exclusive (나하고만 이런 사랑을 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J에게는 자기의 남편과 이런 비밀스럽고 더 가까운 사랑을 하게 되기 바란다.  J가 나보다 다른 사람과 더 친할 때, 좋은 관계가 되길 바랄뿐 샘나지 않는다.  N은 영원한 나의 팀-그것도 팀원이 오직 둘뿐인.)하고, 

- 훨씬 알아주고 받기를 바라고 (J가 내 사랑을 알아주고 내게 사랑을 주면 참 좋지.  하지만 안그래도 섭섭하지만 꽤나 괜찮다.)

- 훨씬 비밀스럽고

- 훨씬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당연 약점도 포함해서)

이런 점들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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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N을 대해야 할지 혼돈스럽다.  미숙하고 좌충우돌 하지만 난 언젠부턴가 N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  (어리석게도 그것을 어제 확실히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줄만 알았다.  몇 년 전에 사랑을 해보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를 굉장히 vunerable 한 위치에 두는 것이다.  (주님과의 사랑 만이 예외인듯) 


나의 사랑을 주겠다는데, N은 그것을 바라지는 않는단다.  그저 자기에게 기대(그런 사랑을 되돌려달라는)를 하지만 말아단다.  그저 목자목녀님 대하듯 거리와 교양으로 대해달란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예쁘고 비밀스러운(물론 힘들게 하는 것도 포함되겠지) 사랑을 주겠다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단다...  


N에게 나의 사랑만이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인 때도 있었겠지.  그 사랑을 얻게 되면, 어떠한 어려움도 감당하겠다고 확신하던 때도 있었겠지.


지금은 아니란다.  그저 목자목녀님 대하듯, 교양있게 대하달란다.  


난,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게 N의 사랑이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나의 사랑을 원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나님을 바라본다.  이 상황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몇 시간 후면 J가 온다.  그 아이에게 건강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이 참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 아이가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도 내가 알콩달콩 결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준 것이 전혀 없어서 인 것 같아서, 마음이 미어진다.  주님 앞에 엎드려진다.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J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N 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믿고, 결국엔 주님의 계획이 이뤄짐(승리)을 믿고, 승리한 자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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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tips

카테고리 없음 2017. 12. 1. 08:57


* 거울

- 치약

- 과산화수소수 + soda


* 물 때 욕조

- 식초 1/2C + 알콜 1C + 소다 1/4C


* 더러운 화장실 바닥

- 리스터린/치약 + 물


* 후드

- 소다 3~4C + 뜨거운 물 + 주방 세제 조금


* 변기

- 식초 (염소계 세제 절대 섞으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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